맥주 맛에서 말하는 균형(Balance)란 무엇일까

균형이란 어떤 느낌을 말하는 걸까

여러 맥주 시음기들을 읽으시다 보면 자주 등장하는 표현 중의 하나가 '균형' 일 겁니다. 아직 맥주라는 분야를 알아가는 단계에 계신 분들께서는 시음 기를 보면서 '저 사람들이 말하는 맥주 맛에서의 균형이 뭐지? '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네요.

 

맥주 맛의 균형에는 거창한 뜻이 있지는 않습니다. 말 그대로 맥주 맛을 이루는 구성요소들.. 이를테면 맥아, 홉, 효모, 부가 재료들 가운데서 한 요소의 특징만 강조되지 않고 두 가지 이상의 맛이 조화를 이룰 때 균형 잡혀있다고 합니다. 특히 맥주 맛의 여러 요소들 가운데서 맥아(Malt)와 홉(Hop)의 균형을 가장 중점적으로 판단하죠.

 

맥아 위주로 진행되는 맥주(Malty Beer)는 당을 목적으로 사용되는 맥아가 아닌, 맛-향-무게감-질감을 강화하기 위한 캐러멜, 블랙, 멜라노이딘, 크리스털 맥아 등의 특수 맥아들의 비중이 높습니다. 이 경우 블랙 몰트 같은 탄 맛을 위해 제작된 제품들을 제외하면 특수 맥아들은 대다수가 달짝지근한 맛을 갖추게 됩니다.

 

홉 위주로 진행되는 맥주(Hoppy Beer)는 홉의 다량 투입으로 자몽, 오렌지, 포도, 멜론, 건포도, 허브, 건초, 꽃 등등의 맛과 함께 홉의 주 역할인 쓴 맛이 중점적으로 드러나는 맥주입니다. 쓴 맛은 적은 가운데 홉의 맛과 향이 강해도 Hoppy 하다고 말할 수 있지만, 맥주 맛에서 맥아와의 균형적인 측면에서 바라보면 홉 고유의 쓴 맛에 초점을 맞춥니다.

 

한 가지 알고 계시면 좋은 점은 "맥아는 홉과 같은 쓴 맛을 맥주에 부여하지 않고, 마찬가지로 홉도 맥아처럼 맥주의 단 맛에 기여하지 않습니다".   홉을 100 톤을 넣는다 해도 캐러멜과 같은 맥아의 맛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즉 맥주의 맛에서 균형이 맞는다 → 맥아의 단 맛과 홉의 쓴 맛이 대등하다는 의미입니다.

 

 

맥주 맛의 균형은 상당히 중요한 평가기준이 될 수 있지만 모든 맥주에 적용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각각 고유의 맥주 스타일마다 한 요소(맥아, 홉, 효모, 부가 재료)만을 부각하는 맥주들이 꽤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관한 예로서 가장 대표적인 스타일이 독일식 바이스비어(바이젠)로서 바이스비어 특유의 바나나/클로브의 달달한 맛은 전적으로 효모에서 비롯합니다. 바이스비어에서 맥아와 홉의 맛은 그저 조연일 뿐입니다. 헤페-바이젠의 노란색-금빛 색상은 맛을 위한 특수 맥아가 사실상 거의 포함되지 않았다는 증거이며, 홉은 그저 효모취를 잡을 만한 수준의 아로마 홉들로만 구성됩니다.

 

또 다른 예로는 독일의 도펠 복(Doppel Bock)들은 맥아로 점철되는 맥주(Malty)들입니다. 어두운 계열의 특수 맥아들의 효과로 그을려진 흑설탕이나 약간의 스모키 한 맛을 지니며, 홉은 거의 꽃과 같은 화사한 풍미를 내는데만 맞추어져 있죠.

 

그리고 람빅(Lambic)이나 베를리너 바이세(Berliner Weisse)와 같은 시큼한 맥주(Sour Ale)들은 젖산균의 맛만 있을 뿐 홉과 맥아의 단 맛은 실종 상태입니다. 밸런스 붕괴 맥주의 대표 격이죠.

 

따라서 맥주 맛의 균형을 판단하는 일은 적용될 수 있는 맥주 스타일에서 가능한 것으로, 이는 경험을 통해 학습을 통해 맥주의 스타일을 마시는 시음자가 숙지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가령 바이스비어를 마시고 "이건 쓰지 않아서 균형이 맞지 않아!" 라던지, 람빅을 마시고 "이건 신 맛만 나는 밸붕의 괴상한 맥주"라고 말하기는 무리가 있습니다.

 

물론 입맛의 취향에 맞지 않기에 불평하는 것은 가능하며 취향은 취향대로 존중받아야 하지만, 맥주도 맥주 스타일마다의 엄연한 특징들도 역시 존중받아야 합니다. '건축학 개론' 같은 멜로 영화에서 좀비가 나오지 않는다고 악평을 하거나 클래식을 들으면서 일렉 기타의 음이 없다며 실망하는 경우가  억지가 될 수 있는 것처럼요.

 

 홉과 맥아의 균형이 잘 맞는 대표적인 스타일은 영국식 ESB(Extra Special Bitter)나 미국식 Amber Ale , 임페리얼 IPA 들로서 단 맥아의 맛이 씁쓸하면서 향긋한 홉의 맛과 대조를 이루면서도 맥주 안에서 함께하고 있습니다. (특히 영국의 ESB는 감미로운 맥아의 단 맛 + 홉의 Spicy 함 + 에일 효모의 과일 풍미가 고루 드러나는 조율의 정석을 보여주는 스타일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특히 땅 덩어리가 넓은 미국에서는 같은 IPA 스타일이라도 East Coast / West Coast IPA로 나누는 경향이 있는데, East Coast IPA는 맥아의 잔당감(단 맛)이 홉과 공존하는 형태이며, 반면 West Coast IPA 는 효모로서 맥주를 잔당감 없이 발효하여 깨끗한 맛(Dry)에 홉의 풍미만 잔뜩 담아낸 성향을 띕니다. 균형적인 측면에서 보면 East 가 West 보다 좋다고 하지만 균형이 좋고 나쁘다는게 항상 우열관계를 성립하지는 않습니다.

 

IPA 는 본래 홉에 포커스를 둔 스타일이니 마시는 사람은 당연히 홉의 강한 성질을 기대할 터인데, 맥아가 홉을 느끼는 것에 방해 요소로 작용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맥아의 성질(Malty)이 소멸된 West Coast IPA를 선호하는 취향의 사람들도 있죠.

 

맥주에서는 홉과 맥아의 균형이 아닌 맥아와 효모의 균형도 충분히 가능하며(바이젠복, 플랜더스 Oud Bruin, 쿼드 루펠), 부가 재료와 효모(벨지안 화이트), 홉과 효모(벨지안 IPA)의 밸런스를 중시하는 맥주들도 존재합니다. 양조장이나 맥주를 만드는 양조가의 성향에 따라 균형이 미덕이 아닌 기존의 맥주 스타일에도 균형이란 측면을 불어넣기도, 이미 균형을 이루는 맥주에 맛의 요소를 추가하여 또 밸런스를 이루게도 하는데, 가까운 예로 국내에도 들어오는 슈나이더 호펜 바이세(tap5)는 맥아 + 효모의 조합인 기존의 바이젠복에 소외되었던 홉의 특징을 더한 것입니다.

 

슈나이더 호펜 바이세 같은 맥주들이 맥주 시음에 있어서 상당히 재미있고 흥미로운 경우로 모름지기 바이젠복(Weizenbock)이라면 "높은 도수 = 많은 맥아 사용량 = 맥아적 성질(Malty) + 바이젠 고유의 효모 풍미"의 밸런스만 생각하면 되는데, 홉의 난입으로 삼자 구도가 형성되어 각각의 맛의 요소들이 맥주 안에서 힘겨루기를 펼치게 됩니다. 원래 가장 재미있는 구경이 싸움 구경이라고 이런 맥주들은 마시면서 심심할 틈이 없습니다.

 

임페리얼 스타우트(Imperial Stout) 나 임페리얼 IPA와 같은 경우는 전반적으로 홉과 맥아의 팽팽한 줄다리기가 쟁점이지만, 요즘 크래프트 브루어리들은 양자 대립구도를 갖추는 기본 스타일의 맥주에 소외받던 맛의 요소를 하나 추가하여 삼자구도를 형성하기를 좋아합니다. 뜬금없지만 역사적으로 봐도 3자 구도 (고구려-백제-신라 , 위-촉-오)가 흥미진진하죠.

 

맥주 맛에서 균형이란 평준화로서도 이야기가 될 수 있는데, 대결의 장이 비교적 온순한 중간 수준의 평준화(ESB, Amber Ale, 도수: 5-7%),  여기저기서 강펀치가 난무하는 상향평준화(Imperial IPA, Quadrupel, 도수: 7-10%)  맥주들로 균형을 구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향평준화.. 이를테면 버드와이저나 카스와 같은 Light 라거에서 홉과 맥아의 균형을 발견하실 수 있을 거란.

 

맛의 균형을 필요로 한다는 스타일의 맥주들 가운데서도 브랜드에 따라 어떤 제품들은 처참한 밸런스 붕괴를 가져오기도 하는데, 이런 경우는 음용하는 사람에 따라 밸런스 붕괴가 호불호로서 갈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홉(쓴맛)과 맥아(단맛)의 균형만 잘 맞더라도 중간은 한다는 마니아들의 의견이 개인적으로 절실히 와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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