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블 홉(Noble hop variety)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홉(hop)의 귀족, Noble Hop

이런저런 맥주들을 접하다 보면 한 번쯤은 마주치는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Noble이라는 단어인데, 맥주에 있어서 Noble은 Noble Hop을 의미합니다.

 

Noble Hop을 글자 그대로만 따지면 고귀한 홉을 의미하겠지만, 홉 같은 식물이 고귀해봐야 얼마나 고귀하겠습니까. 맥주계에서 노블 홉 하면 통상적으로 아래의 특성을 갖는 컨티넨탈(Continental : 영국, 아일랜드를 제외한 유럽 대륙) 산 홉을 의미합니다.

 

1. 플레이버와 아로마가 대단히 좋다.

2. Alpha Acid(*주1)는 낮다. (2~6%)

3. Beta Acid(*주2)도 낮다.

4. alpha acid와 beta acid의 비율이 1:1에 가깝다.

5. Humulene(*주3)이 많다

6. Myrcene(*주4)이 적다.

7. 보존성이 굉장히 떨어진다.

8. 특정 지역에서 생산되어야 한다. 

 

대략 이러한 특성을 가지고 있는데,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듯이 위와 같은 노블 홉의 특성을 완벽히 갖추고 있다고 해서 아무나 노블 홉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일반적으로 순수혈통 노블 홉이라고 인정받는 홉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일단, 누구라도 이의 없이 노블 홉이라고 인정하는 성골은 아래 2종이 있습니다.


1. Tettnanger Tettnang : 독일 테트낭에서 생산되는 테트낭
2. Czech Saaz : 체코의 자텍(Žatec)에서 생산되는 자체

대체적으로 노블 홉으로 인정받는 진골은 아래 2종입니다.
3. Hallertauer Mittelfrüh : 독일 할러타우에서 생산되는 미텔프뤼
4. Spalter Spalt : 독일 슈 팔트에서 생산되는 슈팔트
마지막으로 사람들이 잘 안 끼워주려고 하는 육두품이 하나 있습니다.
5. Hersbrucker Hersbruck : 독일 헤르스 부르크에서 생산되는 헤르스부르크
넓은 범위에서 이 다섯 개까지를 노블 홉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간혹, 단순히 독일계 홉을 뭉뚱그려 노블 홉이라고 한다던지, 영국의 퍼글, 켄트 골딩까지 노블 홉의 범주에 넣는 경우도 있는데 일반적인 케이스는 아닙니다.) 노블홉의 산지는 아래와 같습니다.

 

오리지널 지역에서 벗어나서 재배된 품종들, 이를테면, Hallertau Hersbruck (할러타우 지역에서 재배한 헤르스 부르크라는 품종), US Tettnang(미국에서 재배한 테트낭) 같은 홉들은 당연히 노블홉으로 인정받지 못합니다. 독일 노블 홉의 직계 후손이며 비슷한 특성을 지닌 Liberty, Santiam, Mt. Hood 같은 미국 홉도 노블 홉으로 인정 받지 못합니다.

 

슬로베니아의 Styrian Golding은 노블 홉의 특성을 완벽히 갖추고 있지만 노블 홉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서자 라인들은 이미 충분히 좋은 홉으로 인정을 받고 있기 때문에 신분상승(?)의 기회를 호시탐탐 엿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실질적으로 한 품종의 홉이 다양한 지역에서 재배가 되기 때문에, 노블 홉의 정의 그대로 그 지역에서 생산된 그 이름의 홉을 홈브루잉 서플라이에서 구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쇼핑몰에서도 원산지 표시를 국가 단위만 해두기 때문에 일반 소비자가 지역까지는 알기가 어렵습니다. 또, 노블 홉 중 미텔프뤼 같은 경우는 병충해에 대단히 취약하기 때문에 세계 최대의 홉 산지인 할러타우 지방에서는 병충해에 강한 품종인 헤르스 부르크, 할러타우 골드, 트래디션, 매그넘 등의 대체품종을 주로 재배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미텔프뤼를 구하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게 현실입니다. 할러타우 골드는 일반 시중에서 그냥 '할러타우'라는 이름으로 널리 팔리고 있고, 헤르스 부르크는 헤르스 부르크에서 생산한 헤르스 부르크보다 할러타우에서 생산한 헤르스 부르크가 구하기가 훨씬 쉬운 역전 현상이 생기기도 하였습니다. 따라서 정진 정명의 노블홉으로 맥주를 만들기는 더 이상 쉽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German Hallertau (AA% 4.3%) / Tettnang (3.7%) / Saaz (3.0%)
노블홉의 특성을 가지고 있는 홉들. Alpha Acid가 대단히 낮습니다.
보통 저렇게 Hallertau라고 포장되어 있는 홉은 거의 Hallertau Gold라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미국의 Liberty(3.9%) / 슬로베니아의 스타 이리 언 골딩 (3.6%)
서자로 태어나 노블 홉에 끼어보려는 아이들.
Alpha Acid와 Beta Acid의 비율이 이상적으로 1:1에 가깝습니다.

 

노블 홉이 아닌 상놈(?) 홉들.
이렇게 Alpha산의 수치가 높은 홉들은 비터링에 주로 쓰입니다. 상놈들은 그저 쓰디쓴 일이나 해야죠. 하지만 Alpha산의 수치가 높은 홉 중에서도 향이 좋은 놈들은 비터링 뿐 아니라 아로마링에도 쓰는데, 그러한 홉들은 다용도 홉(Dual Purpose Hop)이라고 부릅니다. 주로 아메리칸 시트 러시계 홉이나 호주/뉴질랜드 홉 같은 신대륙 홉 중에 다용도 홉이 많습니다.

 

사실 테크니컬 한 측면에서 엄밀히 따지고 본다면 노블 홉과 노블 홉의 특성을 갖춘 홉을 굳이 구분하는 것이 큰 의미는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노블 홉의 재배지가 비슷한 지역에 몰려 있는 것으로 봐서 남부 독일의 어떠한 기후나 토양적인 측면이 지구 상에서 가장 향긋하고 아름다운 홉을 키워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으며, 그러한 독일 노블 홉들이 세계 맥주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는 사실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 점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서 독일의 몇몇 홈들을 노블 홉이라고 불러주는 것도 크게 나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또, 이러한 부분이 맥주를 즐기는 또 하나의 재미가 되며 여흥이 되지 않을까요? 지금 이 순간도 Noble이라는 단어는 브루마스터들에게 하나의 로망이 되어 현재 시중엔 맥주 이름에 대놓고 Noble을 붙인 상업 맥주들이 수십 종에 달하며, 많은 홈 브루어 들은 자신이 만든 맥주에 Noble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데 있어 주저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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